호텔리어 강태영의 서비스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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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영 인물닷컴 기사

Edward Kang 2018. 7.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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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31) 호텔리어 경력 38년 더리버사이드호텔 총지배인 강태영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3/06/06 [14:14]
 
 
 
[클릭이사람] (531) 호텔리어 경력 38년 더리버사이드호텔 총지배인 강태영

공고출신 호텔리어의 화려한 변신. 가장 밑바닥 ‘벨맨’으로 근무하던 특급호텔에 30년후 가장 높은 총지배인으로 다시 왔다.
▲     ©인물뉴스
서울 강남 더리버사이드호텔 강태영(57) 총지배인은 호텔리어 경력이 자그마치 38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6년 ‘벨맨’으로 출발하여 호텔리어로 평생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더리버사이드 전체 임직원 290명 중에서 총지배인은 딱 1명으로 그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30년전 벨맨으로 근무하던 특급호텔에 총지배인으로 금의환향했다.

1983년 1월 더리버사이드에서 결혼하고 3월에 워커힐호텔로 자리를 옮겨 25년을 근무했다.
2008년 명퇴해서 5년간 대학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고 골프장 사장도 하다가 2013년 더리버사이드 총지배인으로 왔다. 1983년 벨맨으로 퇴직한지 30년만에 호텔리어의 큰 별로 돌아왔다.

“서울 도심에서도 교통 좋고 분위기 좋은 웨딩홀이 있으며 뷔페식당과 스파 사우나로 유명한 더리버사이드 호텔에 총지배인으로 왔으니 큰 영광이죠”

고졸 학력으로 호텔에 들어와 가장 밑바닥에서 일한 벨맨 출신이 대학 겸임교수까지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놀랍다.

“저는 행복한 호텔리어입니다. 현재 큰 딸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근무하고 있으며 아빠를 멘토로 생각한다는 말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족한 상태로 시작하여 평생 공부하고 배우며 30년 넘도록 호텔리어의 삶을 천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양공업고등학교 토목과, 서울 산업대학교 토목과, 세종 관광대학원 호텔경영학과 졸업(경영학 석사)하고 국제대학 관광경영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섰다. 고졸 출신이 대학 강단에 섰으니 그를 보면 노력해서 못 오를 나무가 없을 듯싶다.

도큐호텔 식음료부, 코리아나호텔 객실관리부, 리버사이드호텔 식음료부,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객실팀 부장, 워커힐 인천공항 사업소장, 환승호텔 총지배인을 거쳤다.

현재 The Riverside Hotel  총지배인으로 호텔리어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그가 공고 토목과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 인물뉴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고3 때 토목회사에 다니던 중 측량과 도면 그리는 작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사용하던 제도기를 퇴근길 큰 건물에 무작정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져 파손된 제도기를 주워서 휴지통에 버리기 위해 그 건물로 들어갔다. 거기서 멋진 로비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벨맨, 프런트 클락을 보고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곳이 현재 장충동의 앰배서더 호텔이었고 그이후로 호텔에 입문하게 되었다

호텔리어는 호텔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로 그 중에서도 주로 영업부서사람을 호텔리어라고 많이 부른다.

“제가 처음 근무할 때만 해도 호텔보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시대가 변하여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지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고학력자가 많아지며 호텔리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호텔리어가 되려면 우선 대인 관계가 좋고 서비스 마인드가 몸에 배야하며 꾸준한 자기계발이 뒤따라야 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 2외국어 하나 정도는 구사해야 한다.

“호텔리어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인 총지배인은 영업을 책임지고 총괄하며 호텔의 수준을 가늠할 서비스 시스템구축과 교육을 통해 특급호텔다운 면모를 지속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매출향상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각 영업장 책임자들과 정기 미팅을 갖고 영업 분석을 통해 세부전략을 세워나가는 중책을 맡고 있다는 그의 설명이다.

행복한 호텔리어 아빠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의 큰 딸도 호텔리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딸이 호텔(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 지배인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은 유학파 직원들이 많아 위축될 수도 있지만 저희 딸은 국내에서만 공부한 토종으로서 많은 노력과 좋은 대인관계로 지금의 위치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본인의 멘토라 생각한다니 고맙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인 30여 년 전(前)만 해도 고졸이 초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점점 고학력자들이 호텔리어가 되고자 노력하고 현재는 학력보다는 전문성이 높게 평가되어 가고 있다.

그 역시 고졸로 출발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최고의 스펙에 최고의 위치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성공맨이 되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본인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가족들의 힘, 특히 학부모라고 할 정도로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도 컸다.

“가족은 제가 결혼해서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인터컨티넨탈의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큰 딸, 그리고 인천공항에 다니는 둘째딸과 늦둥이 고3 막내아들이 있습니다. 모두 저의 든든한 후원자들이지요”

그는 평생 특급 호텔로 출근하고 호텔에서 생활했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은 호텔과 담을 쌓고 살아왔다고 털어놓는다.

▲     ©인물뉴스
“가족들은 호텔이용이 별로 없었습니다. 워커힐 있을 때 20년 근속으로 객실숙박권이 나와 식구들이 딱 한 번 1박 한 적은 있었습니다. 다만 뷔페식당 등은 1년에 한번정도 생일 쿠폰이 나오면 이용하곤 했습니다.”

2001년 MBC 인기드라마 호텔리어 방영당시 그는 드라마 촬영 무대였던 워커힐 당직 지배인으로 근무하면서 촬영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실제로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배용준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고 매너가 아주 좋았다는 직원들의 후문이 많았어요. 또한 송윤아는 스타일이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고 하네요.”

드라마 촬영현장을 직접 지켜본 그는 “드라마다보니 호텔에서 일어나는 현실과는 성격이 다르고 과장이 많아 보였다”면서 당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드라마가 히트한 후 배용준 패키지로 일본인들이 단체 관광을 많이 왔어요. 제가 일본 방송과 인터뷰한 프로를 본 일본인들이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 올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30여년을 호텔리어로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기억으로 고객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을 때를 꼽는다.

“첫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친절한 안내로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는다는 편지를 받으면 너무 기분이 좋죠. 하지만 호텔리어의 길을 가려면 평생 토․일요일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합니다.”

그 역시 평생을 주중에 쉬었다면서 주말 휴일은 엄두도 못내고 현재 금요일을 쉬고 있다고 귀띰한다.

“하지만 호텔리어의 외길을 걸어온 저로서는 한국 호텔업계의 발전에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자체가 보람이고 자랑스럽습니다.”

처음 호텔 벨맨으로 입사했던 더리버사이드에 30년만에 총지배인으로 다시 온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 전 리버사이드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이곳에 근무하다 워커힐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말단 사원에서 호텔의 꽃인 총지배인으로 돌아왔으니 감회가 새롭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과 아내의 뒷바라지가 다사한번 뇌리를 스칩니다.”

호텔리어를 꿈꾸는 젊은이들이나 후배직원들에게 롤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인 총지배인으로써 그는“호텔에서 근무하려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사람 만나는 일이 좋아야 하고 꾸준한 외국어 공부로 다양한 국적의 고객과 원활한 대화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직원과 고객을 대하려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필요하겠죠. 자기에게 맞는 건강법(운동)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지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세운 목표는 꼭 이루겠다는 열정과 노력의 강도에 따라 성취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간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이루면 빨리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꾸준한 노력으로 아주 늦게 이루어진다 해도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호텔리어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는 앞으로 현업에서 7~8년 열심히 내공을 발휘한 후 후배를 양성하고 60대 중반부터는 펜션을 직접 운영할 생각이다.

“사업도, 생계유지 차원도 아닌 하고 싶은 일, 아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익보다는 안락하고 서비스가 좋은 장소로 만드는 것이 꿈이자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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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3년 06월 06일 14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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