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이준석·박지현을 토사구팽하는 한국정치
- 기자명 이호
지방선거 전, 본지는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실을 통해 박지현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박 위원장은 대선 패배 후 지방선거를 위해 비대위원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20대에 일약 야당 대표가 된 그는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인터뷰 요청에 민주당 대변인실에서는 사전에 인터뷰 내용을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거침없이 밝혔던 그였기에 의외였다. 사전에 점검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유는 그의 돌출 발언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제되지 않는 발언이 뜻하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말도 들렸다.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민주당 내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지현 외면한 더불어민주당
8월 말,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이번 전당대회의 가장 큰 관심은 이재명 의원의 당 대표 출마 여부다. 그리고 그가 출마한다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승부는 싱겁게 끝날 공산이 크다. 돌아보면, 국민의힘은 대선을 앞두고 당 대표 선거에서 30대의 이준석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정권교체의 단초를 마련했는데, 그만큼 전당대회 흥행은 이후 정치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뻔한 전당대회가 되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연이은 대선과 지선 패배를 딛고 차기 총선승리의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전당대회의 흥행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어대명 전당대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통한 컨벤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선언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또다른 이슈가 됐다. 그의 출마는 어쩌면 흥행없는 전당대회에 그나마 양념 역할을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박 전 비대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 불허 결정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박 전 비대위원장을 향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좌충우돌하는 그의 발언에 반감이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김남국 의원 등 친이재명계의 노골적인 견제도 한몫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박 전 비대위원장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어느새 민주당 전당대회의 이슈는 ‘박지현 대 반박지현’이 되어 버렸다.
민주당으로서는 참으로 답답하게 된 것이다. 후보로서 대선 패배의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고 했던 이재명 의원은 정치일선에 다시 섰고, 이번에는 당 대표 출마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성찰하겠다는 그의 얘기는 현실정치의 벽 앞에서 빛이 바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반발과 저항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체면이 구겨버린 셈이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패기의 젊은 정치인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속좁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여성 정치인에 대한 SNS를 통한 무차별적 공격이다. 일부이지만 비판을 넘어, 조롱과 비하, 심지어 성희롱적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퇴출 강행
국민의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준석 대표를 중징계함으로써 당 대표직을 정지시켰다. 지난해 정권교체가 요원했던 상황에서 이준석이라는 젊은 정치인을 통해 노회하고 보수적인 정당 이미지를 새롭게 바꾼 국민의힘은 대선 승리는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압승했다. 대표적인 젊은 보수 정치인의 면모를 보인 이준석 대표가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대선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갈등이 불거졌다. 선거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잠시 봉합됐지만, 지선이 압승으로 끝나자 갈등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본격적인 집권당 내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이준석 대표는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중징계에 의한 당 대표 직무정지로 사실상 퇴출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에 대한 이 대표의 저항도 만만치 않지만, 결국 여권의 압도적 힘의 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으로서는 이준석 축출로 인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당장 떨어지는 지지율이다. 이른바 ‘이대남’의 지지를 업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여권으로서는 이들의 이탈을 어떻게 막을지가 고민이다. 악화되는 경제상황도 문제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고’ 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냉전체제로 가는 국제정세가 글로벌 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은 국민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새 정부는 아직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새 정부는 전 정부에 대한 대대적 사정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야당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려는 정치보복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몰려있는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의 협치는 고사하고, 갈수록 극한 대립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이준석 대표에 대한 중징계를 통해 나타난 집권당의 권력투쟁까지 겹치는 상황은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86세대, 청년세대 축출된 자리에 ‘70년대 독재’의 유령이?
오늘의 얘기를 정리한다. 민주당의 경우 전당대회의 이슈는 정책과 노선 그리고 인물이 돼야 한다. 어대명과 특정인에 대한 배척이 중심이 되면 누가 승리하던 상처뿐인 승리일 뿐이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당 대표에 대한 초유의 징계는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이 대표에 대한 징계는 어쩌면 이 대표가 당내 지지에 국한되지 않고 당원과 국민적 지지를 통해 존재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이번 징계를 통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서도 참으로 낯부끄러운 상황이 됐다. 아니, 국민은 물가고와 경기침체에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보여줘야 하는 여권은 내분에만 휩싸여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오늘의 한국정치는 이준석과 박지현이라는 청년정치를 배척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들이 청년정치 모두를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이들을 품을 수 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한때 86세대로 상징되는 80년대 주역들의 등장이 한국 정치를 발전시켰고,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 것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공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86세대도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대교체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퇴진이 현실화 될 가능성도 있다. 이준석, 박지현으로 상징되는 청년정치의 등장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도도한데, 86세대 퇴진과 함께 청년정치마저 축출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럼 그 빈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까? “설마 70년대 권위주의, 독재의 유령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겠지”하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그렇지 않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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