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ㆍ‘고가 공원’ 서울로 따라 달빛 산책
ㆍ한강 유람선 위에서 시름 흘려보내고
ㆍ코엑스 앞 광장에선 생맥주로 짠! 더위 날려
휴가 절정인 7월 말에서 8월 초 전국 어디를 가나 차가 막히고 사람에 치인다. 이럴 땐 서울의 ‘야(夜)한’ 밤을 즐겨보자. 온종일 이글거리던 아스팔트 위로 어스름 달빛이 내리면 서울은 낮과 또 다른 매력적인 도시로 변신한다. 서울의 색다른 밤을 찾아나섰다.
■ 거꾸로 걸으면 한적하다-서울로 7017
“사진만 봐도 덥던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니?” 직장 동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2개월여 전 새롭게 공원으로 조성된 옛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로 7017’이 떠올랐다. 서울로는 남대문시장, 청파동, 중림동, 만리동 방향으로 크게 네 갈래 길인데 북적거리는 곳은 남대문시장 쪽이다. 만리동 쪽은 인적이 드문 편이다.
지하철 4호선 서울역 5번 출구로 나왔다. 1970년 세워진 서울역 고가도로의 옛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승용차들이 내달렸던 도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남대문 방향이 아니라서 그런지 서울로를 걷는 발걸음은 뜸했다. 배낭을 멘 외국인은 뭐가 신기한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먼저 만리동 쪽 고가도로 바로 밑에 있는 한식집 ‘서울 화반’을 찾았다. 더운 바람을 안고 들어섰지만 이내 시원해졌다. 360도로 확 트인 통유리창과 진초록의 벽과 천장, 좌석 앞에 폭염도 맥을 못 추는 듯했다.
“한 달에 한 번 유명한 셰프들이 번갈아 가며 비빔밥을 내놓는데 숟가락을 들면 내려놓기가 힘들다고들 하세요. 으깨지 않고 채를 썬 감자전은 쫀득쫀득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좋지요.”
권동필 총괄셰프(40)의 추천대로 멍게비빔밥과 감자전을 시켰다. 싱싱한 멍게에 쫄깃한 무말랭이가 얹어진 비빔밥은 알싸하면서도 향긋했다. 1.5㎝ 정도 되는 두께에 빈대떡처럼 튀겨나온 감자전은 바삭바삭한 포테이토 같았다. “식감을 살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해가 뉘엿해질 무렵 카메라를 들고 본격적으로 서울로 탐방에 나섰다. 서울로는 한가했다. 나무 화분을 지나 10분쯤 걸었을까 인파가 몰려 있는 것을 보니 서울로에서 가장 붐빈다는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사이다.
서울로에서 야경을 담기 좋은 포인트는 딱 2군데다. 석양을 조명 삼아 서울역 건물과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를 배경으로 하거나 건너편 기찻길이 나오도록 찍는 것이다. 매일 오후 8시부터는 서울스퀘어 벽면에서 미디어파사드가 펼쳐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걷고 뛰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그림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도 좋다. 내려오는 길에 ‘목련다방’에 들러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영업 2개월 만에 매출 1억원을 올린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계산기를 보니 정말 1억1150원이라고 찍혀 있었다.
■ 뒤집어보면 재밌다-‘야(夜)한’ 서울
“저녁 7시30분에 뜨는 마지막 유람선을 타자고?” 여행을 좀 다닌다는 지인의 제안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거절하기 어려워 기대도 없이 약속장소인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잔디밭에 앉고 누워 열대야를 식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한강아라호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호화 유람선만큼은 아니지만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공간도 널찍했다. 2층으로 올라가 요즘 대세라는 생맥주 기계에 일회용컵을 올려놓고 부드러운 거품까지 담았다. 야외전망대는 강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 의자마다 노을이 떨어져 붉었다.
배가 움직이자 멀리 63빌딩과 금융사 고층건물의 화려한 불빛이 강물을 따라 잔잔하게 부서졌다. 옷깃을 헤치는 바람은 시원했다. 탁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 한강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서울의 밤을 추억하는 외국인들까지 파리 센강의 유람선 부럽지 않았다. 선상에서는 라이브 통기타 공연도 열렸다.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매일 보는 한강이 이렇게 괜찮은지 미처 몰랐다.
“주말 밤에는 강남의 영동대로변으로 가보세요.” 한강아라호에서 내리는데 젊은 연인이 “CUP(COEX Urban Park)에 가면 매주 무료공연을 볼 수 있다”며 “생맥주와 와인 한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고 귀띔했다.
불볕더위에 에어컨 바람이 쌩쌩한 지하몰에 사람이 넘쳐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상 야외공간이라니….
며칠 뒤 CUP를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 내려 전시장 방향으로 300m쯤 걸어가자 500평 규모의 인조잔디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6시쯤 인디밴드 공연이 펼쳐졌다.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무료로 내주는 캠핑 램프와 돗자리를 챙겼다. 푸드트럭의 식음료 가성비는 최고였다. 독일(275㎖)과 호주(187㎖)산 미니 와인이 병당 7000원, 용량은 750㎖ 와인의 3분의 1, 4분의 1 수준이다.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냉장육 스테이크(180㎎)가 9900원이었다. 영동대로는 해가 지면 불야성을 이룬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밤, 도심에서 보내자고 하면 고개를 갸웃할지 모른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번 즐겨보라고.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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