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 비누 광고업무를 맡은 오길비앤드마더는 2005년 96세의 영국 할머니를 광고모델로 내세웠다.
당연히 화제가 됐고 `진짜 미인`에 대한 논쟁거리가 됐다.
젊고 날씬한 여성이 화장품 모델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깬 것이었다.
오길비앤드마더는 어떻게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도브 비누의 모회사인 유니레버가 10개국 소비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여성들은 화장품 광고를 하는 모델로 그들 자신과 몸매가 비슷한 여성이 등장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는 설문에서 신지식 경영에 필요한 `창조형 지식`을 찾아낸 것이다.
오길비앤드마더는 이 같은 아이디어에 착안해 `보통여성` 5명을 진짜 미인으로 소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세계적인 토론거리가 됐다.
오길비앤드마더 회장인 셸리 라자러스는 올해 초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도브 비누의 브랜드 포지셔닝을 찾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의 개념을 사용자(소비자)들과 사이트를 통해 토론했다"며 "고객의 지식을 활용해 얻어진 광고안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고객)가 만들어낸 콘텐츠는 회사가 추구하는 분야에 대해 핵심가치를 정의 내리고 공통의 이해를 찾아내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고객을 활용한 가치창출 사례는 매일경제가 최근 펴낸 미래경영보고서 `다보스 리포트 힘의 이동`에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고객이 갖고 있는 지식과 아이디어가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회사 밖 지식을 활용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게 신지식 경영시대의 기업경영 전략이기 때문이다.
창조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원천은 고객뿐만 아니라 거래업체, 컨설턴트, 경쟁사, 연구소, 원료ㆍ부품 공급업체 등 다양하다.
따라서 혁신을 끌어낼 수 있도록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ㆍ기아차의 총매출은 99년 21조6340억원에서 지난해 44조7740억원으로 급증한다.
이 같은 성장 뒤에 숨어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고객의 불만을 24시간 수집해 해결하는 `글로벌 품질 상황실`이 차량 품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99년 설립된 회장 직속의 상황실은 전 세계 현대차 5000여 딜러, 기아차 3000여 딜러들과 애프터서비스(AS)에서 고객 불만을 접수해 24시간 내 담당자에게 전달한다.
이곳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품질 수비대`로 실시간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아반떼 차량의 뒷좌석 삼각창의 고정 너트 조립 불량이 접수됐을 때도 `즉시 개선`으로 문제의 확산을 막았다.
이 결과 상황실 설립 후 품질개선 속도가 60% 이상 빨라졌다.
고객의 불만을 품질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즉 창조형 지식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키는 2000년부터 소비자들이 직접 신발을 디자인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신발을 디자인해 주문하면 제작ㆍ배달해 주는 컨셉트다.
원하는 고객은 누구나 `나만의 신발`을 제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신발 크기는 물론, 색상ㆍ심벌 등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개인이 디자인한 신발은 클릭만 하면 안방으로 배달해준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기호를 반영해 `맞춤형`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나이키는 사이트(nikeid.nike.com)만을 구축해 고객의 지식으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던 일을 소비자가 하고 있는 웹2.0시대의 모습이다.
마크 파커 나이키 CEO는 "웹의 발전은 곧 소비자들에게로 힘이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웹2.0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업은 이미 위험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매경, 다보스 리포트) 웹2.0이 누릴 수 있는 고객의 지식을 제품과 서비스 창출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객 맞춤서비스`는 1998년 이래 나이키의 핵심 경영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C K 프라하라드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과거 기업경영은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기업과 고객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기업과 고객의 역할이 섞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 고객의 욕구가 표출되고 이것이 모여서 `집단지식(Collective Knowledge)`이 된다.
집단지식은 기업경영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과 이베이는 고객들을 상품 평가단으로 활용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책과 제품에 대한 이용경험, 즉 상품에 대한 지식을 대가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과 이베이는 고객을 무대 위로 올려놓은 뒤 고객의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부를 창출하고 있다.
지식기업들은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제품 혁신 과정에 고객을 끌어들여 고객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고객을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움직임은 `다보스 리포트(매일경제 펴냄)`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기업이 갖고 있던 힘의 중심을 소비자로 이동시키고 있다.
소비자가 힘을 얻게 되고 소비자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차세대 운영체제인 `비스타`의 정식 버전을 내놓기에 앞서 베타판을 내놓았다.
MS는 세계적으로 약 200만명의 테스터와 개발자에게 베타판을 배포해 사용자들의 평가를 받았다.
또한 홈페이지(www.microsoft.com/windowsvista/default.mspx)까지 만들어 적극적으로 고객의 아이디어를 수용했다.
고객의 힘을 빌려 미세한 버그까지 찾아내려는 의도와 함께 신제품 출시를 알림으로써 미리 기업들에 사용할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시스코와 델 컴퓨터는 고객이 회사 정보와 지식 창고에 직접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스코는 회사와 고객 커뮤니티를 접목해 고객을 회사가 접하게 되는 난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활용한다.
고객을 회사경영 동반자로 끌어들이려면 적합한 고객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동시에 고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고객이 지식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지식경영시대, 고객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혁신을 위한 `창조형 지식`이 된다.
[최은수 기자]